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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휴식을 위한 지식]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

프랑스 수학자 푸리에의 인생역정

조회수
127
작성일
2019.06.10 20:11
ParkWonwoo

조세프 푸우리에(Joseph B. Fourier): 프랑스의 수학자 이자 공학자, 행정가.

- 1768년 프랑스, 오제르 지방에서 재단사인 아버지의 두번째부인에 12명 자녀중 9번째 자식으로 태어남.
- 9살에 엄마 사망, 10살에 아버지 사망, 고아가 되어 수도원에 기탁되 성장함.
- 학비가 저렴한 왕립군사학교를 다님. 그러나 머리가 좋아 전과목 공부를 잘했다고 ..
- 자연스럽게 군인을 꿈꿨으나 귀족만 합격되는 당시 군사학교에서 거듭 탈락
- 포기하고 수학에 관심을 가지게 됨. 21살에 뉴턴, 파스칼 같은 수학적 업적을 남기기로 결심

- 프랑스 대혁명 발발, 이것이 자신에겐 기회임을 포착한 푸리에는 정치학 공부로 혁명위원으로 발탁
- 급진좌파인 자코뱅파가 10달 동안 4만명 단두대로 처형.(루이16세, 마리앙뜨와넷, 라부와지에 등 처형)
- 반대파 사형수를 옹호한 죄로 푸리에도 투옥되 사형 될뻔 > 자코뱅파 리더의 처형으로 감옥에서 풀려남.

- 늦게 대학에 입학해 라그랑주, 라플라스, 몽쥬 등에게 수학을 배우고 에콜폴리테크니끄 대학에서 조교 로 근무,
- 그러나 이전 자코뱅파 활동 경력으로 재수감 > 교수들 탄원으로 겨우 사면.
- 나폴레옹의 이집트 원정에 학술조사단 일원으로 참여, 이집트에서 행정, 교육, 고고학 발굴 활동을 성공적으로 수행한 공로를 인정받아 프랑스로 귀국후 주지사로 임명됨.
- 나폴레옹 눈에 들어 남작작위 받음, 이 때 그의 유일한 논문: "열의 해석적 이론" 작성
- 그러나 수학적 증명이 불완전해 존경하던 스승, 라그랑쥬로 부터 인정 못받음.

- 1815년 영국에 패배한 나폴레옹이 엘바섬에 억류되고 루이 18세가 등극하자 왕정을 지지하는 잔머리를 굴린 푸우리에 주지사. --;
- 나폴레옹 엘바섬 탈출로 재집권, 푸리에에게 백작 작위 하사, 그러나 나폴레옹의 재집권은 100일 천하로 끝나고 돌아온 루이 18세는 푸리에의 모든 직위 박탈.

- 이후 힘든시기를 보내다가 나폴레옹을 지지하던 흑역사(?)를 부정하는 노력 끝에 겨우 프랑스 과학원에 들어감.
- 정치가 불가능해지자 그의 유일한 수학적 업적 "열의 해석적이론" 논문을 자비를 들여 출간
- 유럽에서 그의 논문이 인정을 받기 시작함. 수학적 증명은 아직 불완전 했지만 아이디어가 워낙 탁월했기 때문.(모든 주기함수는 사인과 코사인 항의 계수 만으로 표현 가능하다.)
- 이후 그의 제자 디리클레, 프와송 등이 수학적으로 완벽히 증명.

- 62세에 지병으로 사망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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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수학이란 인생의 무상함과 감각의 불완전성을 보상하기위해 부여된 인간의 특별한 능력이다"
-조세프 밥티스트 푸리에-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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